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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자원봉사활동현대사회와 자원봉사/영국과 미국 자원봉사활동의 발전과정 2024. 2. 8. 15:43
영국의 자원봉사 활동
1) 영국의 자원봉사 활동의 발전 과정
영국이 상호부조와 자조의 전통이 강한 나라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영국은 자원봉사 활동 면에서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영국 사회에서 자원봉사자라는 용어가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1647년 스튜어트 왕조 시기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영국은 명예혁명등으로 전국이 혼란과 불안으로 가득 차 있던 때였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스스로 자신들의 마을을 지키고자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자원봉사자라고 불렀다. 따라서 처음에 자원봉사자 라는 의미는 마을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싸우는 자경단의 의미라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영국은 전 세계에 광범위한 식민지를 가진 근대국가로 발전하면서 아메리카, 아프리카, 인도에서 자국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필요로 하였다. 이때 나라를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에서 자원하여 입대한 사람들이 생겼는데 이 지원병들을 자원봉사자라고 불렀다. 이처럼 자발적으로 나라를 지키려 한다는 의미에서 앞서 언급한 자경단. 자위대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9세기 이전까지 자원봉사라는 용어는 대중에게 일반화되지 못하였으며 사회를 위해 무상으로 시간을 제공하여 활동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특별한 용어도 없었다. 구체적으로 자원봉사활동이 지역사회내에 서서히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것은 1884년 영국 런던에 인보관이 건립된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인보관운동의 창시자인 사무엘 바네트는 세계 최대의 도시인 런던에 부자와 빈민 사이가 단절되어 각기 다른 가치관과 불심감에 팽배해 있음을 알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빈민지역에 직접 거주하기 시작하엿다. 그곳은 이스트 런던 지역으로 많은 노예들이 강제로 이주하여 살고 있었다. 그는 빈민과 친구가 되어 서로 깊이 이해하고 상호간의 단절감을 없애며 나아가 가난한 사람들을 교화시켜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자원봉사정신을 기초로 한 인보관 운동은 주로 지식인이 주추깅 되어 참여하면ㄴ서 사회복지의 새로운 활동으로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그 후 이러한 인보관운동은 유럽 제국은 물론 미국, 일본 , 우리나라에까지 확대되어서 각 나라의 지역 특성에 알맞게 변화 되엇으며 의료활동과 위생교육 지역주민 교육을 행하기도 하고 민족의 융합과 발전 사회운동의 거점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할 것은 당시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계층에 대한 부분이다. 첫째 우애방문원으로 참여했던 사람들은 대개 여성이었지만 다른 민간활동의 경우에는 여성의 참여가 매우 제한되엇다는 점이다. 또한 중류층 여성의 참여가 활발하였으나 노동자 집단의 여성의 참여는 부족하였다는 점이다. 둘째, 19세기 민간 활동은 중류층만의 독립적인 분야였는가 하는 점이다. 공식적인 자료에는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게층의 대부분이 중상류층의 주류를 이루는 전문직 숙련공 이상의 사람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저소득 계층의 참여가 없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이렇게 중류층 이사의 사람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것이 문헌에 자주 나타나는 것은 저소득층 사람을 서비스 대상자로 보는 입장이 강했지 때문 일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자원봉사활도으이 제도적인 뿌리는 1601년 제정된 자선신탁법이라고 할 수 있으며 1869년 조직된 영국 런던의 자선조직협회의 우애방문원을 통해 지역사회에서 실천활동이 더욱 활성화 되었다. 또한 1884년 세계 최초로 설립된 인보관운동(토인비 홀)을 통하여 현대적 의미의 자원봉사 활동이 확대되어 나가기 시작하였다. 1948년 에는 베버리지의 제3보고서라 할 수 있는 자원봉사활동 1960년 제정된 자선법, 1972년 제정된 지방정부사회복지서비스법에 의해 자원봉사활동이 지역사회에서 더욱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영국 자원봉사 활동의 발전에 하나의 분기점을 제공한 것은 1968년 아베스 보고서의 발표라고 할 수 있다. 이 보고서는 전문 직원의 서비스를 보완하고 사회서비스의 제공을 통합하기 위해 자원봉사자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를 위해 자원봉사자의 증강, 훈련, 원조에 관한 실천적 전문가의 표준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2) 적십자사의 영국의 자원봉사 활동
영국의 자원봉사 활동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유럽에서 시작된 적십자사의 자원봉사 유래를 살펴보아야 한다. 적십자사의 자원봉사활동은 1859년 이탈리아 군이 오스트리아와 프랑스 연합군과 맞붙은 솔페리노전쟁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앙리 뒤낭은 솔페리노 전쟁터에서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간호하기 위해 지역에 있는 여성과 청소년을 모아 부상자를 간호하였다. 이러한 간호활동이 계기가 되어 시작된 적십자사 자원봉사 조직은 현재 182개국 에서 활동하고 있다. 적십자사는 긴급구호나 재해자원봉사활동에서 세계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선구적인 자원봉사 조직이라고 할수 있다.
3)자원봉사 활동의 조직과 현황
(1) 보충적인 차원에서의 자원봉사 활동
영국은 1945년 이후에 복지국가가 수립되었다. 이것은 전쟁 중에 형성된 국민의 연대감을 반영한 것이다. 복지 국가 수립의 전제가 된 것은 국가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구호와 함께 국민복지에 보다 큰 기여를 해야 하며 따라서 자원봉사활동은 불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자원봉사 부문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물론 복지국가의 일부 참여자들이 자원봉사활동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는 사실은 간혹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가가 서비스 제공의 제일선에 서고 자원봉사활동은 보완작용에 머무를 것이라는 인식이 널리 통용되었다. 그 후 30여 년간 이러한 인식은 정치적,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대체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반면, 자원봉사 부문 자체는 변화하고 있었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커져 가는 불만과 새로운 사회적 욕구의 확인은 새로운 자원봉사단체의 부상을 가져왔다. 이것이 자원봉사활동에 새로운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1970년대 초 영국 전역에서 자원봉사 센터 설립을 위한 모금활동이 시작되었지만 이에 대한 중앙정부의 지원은 미약하엿다. 당시 영국 저우는 주로 '왕실여성자원봉사단'과 가장 크고 오래된 단체에만 재정을 지원하고 있었다.
(2) 자원봉사에 대한 지원정책
자원봉사활동에 대하여 부정적이었던 정부의 자원봉사에 관한 정책도 1979년 이후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사회복지 부문에 관한 정부의 역할을 감소시키려는 보수 행정부의 의도와 함께 많은 법적인 서비스가 자원봉사 부문의 역할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자원봉사자는 다시금 국가의 주요 자원으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자원봉사활동의 역할에 대한 재평가는 보수당만의 독점적인 자구책은 아니었다. 노동당 또한 입장을 바꾸어 자원봉사자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견해를 지지하기 시작하였다.
1977년에 선출된 신노동당 정부는 자원봉사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일련의 주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하였고 이를 위해 청년 자원봉사활동을 장려하는 새로운 전국적 시도, 노인과 흑인 및 소수 민족에게 초점을 맞춘 정책등을 전개하였다.
1977년 실시된 전국조사에 따르면 영국 전체 인구의 48%가 한해동안 공식적인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했으며 남녀 모두 동등한 참여율을 보였다. 그 인구는 약 2,200만 명으로 비공식적인 자원봉사활동까지 포함한 자원봉사 참여율은 74%에 이른다. 전국조사에 의해 밝혀진 가장 보편적인 참여 분야는 스포츠 분야로 전체 자원봉사자들 중 26%가 참여하였다. 자원봉사자의 23%는 아동교육과 학교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같은 비율의 자원봉사자들은 종교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정치와 환경 분야는 각각 4%와 5%로 낮은 참여율을 보였다.
<출처: 자원봉사론3판, 김범수 외 공저>